삐죽삐죽한 마음도 누를 수 있다면
김치찌개를 끓일까 된장찌개를 끓일까 여튼 찌개를 끓이자, 하면서 구입한 만가닥버섯입니다. 그런데 김치찌개도 된장찌개도 심지어 너무 쉬운 어묵국도 안 끓이고 있네요. 냉장고에 오래 두어 물 생기기 전에 먹는 것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볶아서 반찬으로 하긴 적은 양이라 김밥에 넣자 하며 굽습니다.
표고버섯이나 양송이버섯, 팽이버섯은 차라리 김밥에 넣기가 좋은데 만가닥 버섯은 머리(갓)는 동글동글 큰데 비해 몸통이랄까 대는 마르고 길어서 살짝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구워보아요. 기름 살짝 두르고 구운 후 소금 찹찹.
김밥을 말고 썰어본 경험상 자칫 잘못하면 썰 때마다 만가닥버섯이 삐죽하게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김에 밥을 깔고 양배추를 넓게 폅니다. 보통 눅눅함 방지용으로 잘 쓰는 얇은 깻잎으로는 만가닥버섯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양배추 픽! 양배추 위에 만가닥버섯을 최대한 차곡차곡 잘 놓은 뒤 버섯 위로 나머지 김밥재료를 쌓아서 눌러주는 형태를 만듭니다.
살짝 기술 들어가 김밥속을 손으로 잘 감싸쥐듯 재빨리, 그러나 단단하게 말아줍니다. 흐트러지기 쉬운 재료를 넣어 김밥을 쌀 땐 마음도 손도 기합이 좀 더 들어간달까요.
다행히 성공한 모양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김밥 두 알만 만가닥버섯 탈출하고 나머진 예쁘게 자리잡았으니 이만하면 성공입니다.
양배추만가닥버섯을 보니, 삐죽삐죽 올라오는 내 마음의 어두움도 누를 수 있으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디엔가 양배추 한 장 있어 그런 거 올라올 때마다 자자, 들어갑시다 하며 슬슬 눌러주는 거지요.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망치로 아프게 세게 내려치지 말고 “응응, 그 마음 알지, 그래도 어떡해.” 살살 달래가면서요.
생각해보니 웃기지만 또 괜찮다 싶은데요.
오늘 출근하기 싫어서 삐죽삐죽 솟는 어두움 한 자락은 양배추만가닥버섯김밥으로 살살 눌러봅니다.
쌀 땐 힘들어도 씹는 맛은 좋군요. 양배추의 아삭함도 나쁘지 않고요.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누를 수 있겠어요.
첫줄 맨 왼쪽 김밥, 둘째줄 맨 왼쪽 김밥 위에 만가닥버섯 튀어나온 거 보이시죠? 어쩐지 귀엽지 않나요? 튀어나온 버섯도 위에 올려 먹으면 되듯, 튀어나온 마음도 내 마음이니까, 어쨌든 함께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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