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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자고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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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일수록 초록 나를 위해 식물을, 꽃을, 여유를 매년 노동절이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동네 화원에 가서 새로 작은 화분을 사거나, 집의 화분 분갈이를 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식물을 들이는 건 뭐랄까 거칠한 일상, 건조한 삶에 생기를 넣는달까, 일종의 초록영양제 같은 거였어요. 사실은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건강을 다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땐 링거 한 병, 영양주사 한 방 맞는 것도 대증요법은 되잖아요, 왜. 올해 노동절은 너무나 애석하게도 토요일입니다. 주5일 근무를 하니 원래 노는 날인 셈이죠. 이런 게 제일 김새지 않나요. 직장인들은 원래 빨간 날과 노는 날이 겹치는 거 정말 속상하잖아요.(나만 그런가) 그래서 올해는 초록 수혈을 좀 당기기로 했습니다. 노동절은 토요일이라 기다리기엔 김이 빠지고, 뭣보다..
함께 하지 않고 추억을 나누는 법 내가 본 것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매일 아침, 출근 전 커피 타임 혹은 티 타임 장면을 모았더니 이렇게 다채롭네요. 일부러 월, 화, 수, 목, 금 하루씩 찍어 모아보았습니다. 모두 스타벅스 머그이고 나고야, 사애틀,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다양한 도시의 스타벅스에서 산 기념품입니다. 여행에서 짐을 늘리는 게, 더군다나 해외여행에서 짐을 늘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그래서 이 머그들을 한꺼번에 선물받았을 땐,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부터 먼저 들었어요. 이 머그엔 여행의 추억이 듬뿍 있을 테고, 그래서 몇 년을 소중하게 보관했을테니까요. 결과적으로는 받았으니 이렇게 나의 아침을 함께 하는 거겠죠. 내가 본 것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 함께 하지 않고도 추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
올해도 잘 부탁해_딸기케이크와 커피 새해 첫날의 마음 연말엔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걸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2020년은 그런 모임은 꿈도 못 꾸게 되었잖아요. 아쉽고 힘들수록 루틴은 중요하니까, 한 해를 마감하고 정리하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샀어요. 촛불은 딱 두 개, 가족끼리 소박하게. 새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덕담을 나누었죠.이렇게 우리 둘이라도 그러고나니 마음이 훨씬 좋네요. 함께 사는 개는 뭔진 잘 몰라도 촛불 보고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휴일이니까 느긋해도 되지만 새해 첫날이니까 바로 일어나 씻고 옷도 갈아입고 환기도 하고 커피 한 잔 내려서 어제의 딸기 케이크를 크게 한 조각 잘라 함께 먹습니다. 올해는 딸기생크림케이크처럼 부드럽고 적당히 달큰한 날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 때마다 따끈하고 향..
일때문에 끼니를 소홀히 말자 밥 한 그릇 정도는 가지고 있자_까만 영양밥 미리 해두기 오늘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대문을 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합니다. 사실은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입니다. 일할 때 절대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터라, 남들 앞에서 특히 직장 사람들 앞에서는 보인 적 없는 눈물입니다. 이제 집에 왔으니, 괜찮다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울면 안 돼요. 내가 울면 걱정하는 동물가족이 있어요. 그 친구에게 제 감정의 찌꺼기를 묻힐 순 없어요. 다행히 마스크가 표정을 숨겨줍니다. 최대한 하던 대로 마스크를 쓴 채 손을 열심히 씻고, 일부러 더 과격하게 인사합니다. 얼굴은 안 보이게 손으로 우쭈주 하면, 그 친구는 해맑게 뛰며 장난감을 물어옵니다. 그렇게 몇 번 장난감을 던져주고 냉동실 문을 엽니다..
움직이는 마음이 좋다 엄마의 식구, 엄마의 1순위 “밥 먹었나.”“밥 먹고 있어요.”“뭐하고 먹나.”“생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네가 생굴도 먹어?”“엄마, 나는 생굴만 먹고 익힌 굴은 안 먹는데?”“그랬던가? 그랬나. 그랬었나.” 어제 저녁 엄마와 나의 전화통화 내용입니다. 어제는 굴이었지만, 다른 식재료도 많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엄마가 생각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내가 안 좋아한다고 엄마가 생각하는건 많이 좋아합니다. 사실 엄마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엄마와 함께 살지 않은 지 꽤 오래 됐기 때문입니다. 엄마 품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을 앞에 두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소리를 반찬 삼아 숟가락을 놀리던 아이는 이제 없습니다.일 년에 몇 번, 짧은 날을 함께 보낼 뿐, 엄마와 나는 가족이긴 ..
언제나 나의 현실을 살자_사바스 카페 공상과 거짓 세상에, 이제 더이상 나는 없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필터를 거쳐 보는 타인의 일상은 참 화사합니다. 생활의 고단함조차 뽀얗게 보이지요. 그에 비해 내가 가진 건 참으로 초라합니다. 여름마다 모기향을 못 쓰고(함께 사는 개 때문에) 물려가며 손으로 떼려잡은 피터진 모기자국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납니다. 그리고 비교하게 되죠. 화면 속 저 사람의 일상엔 이런 누추함은 없을 거라며. 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에미코 야치의 만화 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돈과 재능, 멋진 외모의 소년 다이가 주인공입니다. 부족할 것이라곤 없을 것같은데 다이는 정말로 불행해요. 어떤 순간에도,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돌봐 준 헌신적인 보호자, 켄의 죽음 앞에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상..
처음을 선물합니다 오늘은 엄마의 아보카도데이 “이게 뭐고?”“아보카도라는 거야.”장바구니에서 아보카도가 나오자 엄마가 신기해합니다. “뭐하는 건데?”“그냥 잘라서 먹기도 하고, 밥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고, 빵에 곁들이기도 해요.”후숙 잘 된 아보카도라서 바로 칼로 반 갈라, 과육 잘 발라내서 슥슥 썰어서 식탁에 놓습니다.“엄마, 드셔봐. 명란 있으면 같이 넣어 비벼먹으면 좋은데, 명란이 없네. 밥에 비벼서 간장 한 방울 쳐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엄마는 아보카도 한 조각을 집어 나물비빔밥에 넣어 대충 으깬 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십니다.“혈당도 잡아주고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대.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엄마 입맛이 워낙 까다로워서 괜히 조마조마해서 어디서 들은 토막정보를 늘어놓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옵니다.“고..
이런 순간에조차 널 정말 사랑해 가족이란 무엇일까 _ 니코니코일기 딩동. 초인종이 울려 나갔더니 문 앞엔 어린아이가 큰 가방과 함께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이곳으로 가라고 했다면서. 알고 보니 그다지 기억이 좋지도 않았던 옛 직장상사뻘(직업 아이돌 출신 배우와 매니저 관계) 되는 사람의 숨겨놓은 딸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 아이가 머무는 몇 달 동안 (아마도) 충분한 사례를 하겠다는 아이 엄마 배우의 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차마 어린 아이를 내칠 순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 코바코 니코와 한 때 매니저였으나 지금은 만화 콘티 작가(후에 TV드라마작가로 일함)로 근근히 직업적 명맥을 이어가는 다카나시 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