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위기라도 물은 먹어야지
아 어쩐지 몸이 개운합니다.
깊이 깊이 잠들어서 그런지 찌뿌둥함 없이 뒤척임 없이 편안하게 눈이 떠지네요.
그래,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지, 기분이 좋습니다.
어 그런데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직 알람도 안 울렸는데에? 혹시 하며 스마트폰을 찾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한 시간 간격으로 두 번 울리게 되어 있는 알람 시간이 훅 지났습니다.
일어나 끄기 전에는 5분마다 다시 울리게 되어 있는데! 절대 내가 끄지 않았는데!
아무리 이상하다 해봐야 일은 벌어졌고, 지금부터 미친 듯이 준비해도 지각의 경계선입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함께 사는 개 님 밥은 줘야 합니다. 문제는 이 개 님이 혼자선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겁니다. 내가 청소를 해야 밥을 먹는 루틴을 갖고 있어요. 이유 모릅니다. 진짜 동물농장에 제보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짬도 없습니다. 마른 걸레에 물을 적셔 방을 닦습니다. 닦는 시늉으론 밥을 먹지 않아요. 열심히 닦는 한편 사정도 합니다.
“나 진짜 늦었어. 그러니까 밥 좀 빨리 먹어주라. 조금이라도 먹어야 해. 어서 먹자 어서!”
다행히 함께 사는 개 님이 내 사정을 봐줍니다. 가끔 장난감을 물고 와 던지라 어쩌라 하지만 평소보다 두 배 속도로 밥을 먹네요. 얼마나 먹었나 저울로 재봅니다. 20그램 정도 먹었네요.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 정도 먹었으면 공복토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 더 먹이고 싶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속도로 씻습니다.
양치질와 머리감기가 동시에 이뤄지고 세면과 샤워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미친 듯이 머리를 털어 대충 말리며 개 물그릇을 씻어 새 물을 받아주고, 새로 배변패드와 배변판을 세팅해주고 흩어진 장난감도 모아주고, 내가 회사에 가 있을 동안 놀 노즈워크 놀이도 준비해줍니다.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일입니다.
평소같으면 몇십분에 걸쳐 느긋하게 하나하나 할 일을 일이분 만에 마칩니다.
하아 출근하기도 전에 기진맥진입니다. 속에서 더운 기운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서두른 보람이 있어 딱 10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진짜 물이라도 제대로 마셔야 합니다.
세일하기에 산 홍초에 탄산수를 붓고 얼음 몇 조각을 넣습니다.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개는 내 무릎에 앉습니다. 궁둥이를 두들겨주며 오늘도 나 없는 동안 잘 지내라고 인사합니다. 그렇게 5분 서로 충전하고, 홍초 한 잔 쭉 들이켜고 집을 나섭니다.
알람 앱 새로 깔아야겠네요. 자명종 시계라면 건전지라도 확인하겠지만, 이유 없이 안 울리는 건 정말 반칙입니다.
그래서 이 글도 이렇게 늦게 올라왔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물 한 잔은 먹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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