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변주로 더 즐겁게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김밥을 먹습니다. 거의 매일 김밥을 먹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렇게 매일 김밥을 먹어도 안 질리냐고 묻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매일 한 끼 김밥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처음 김밥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을 땐, 저도 이렇게 오래 김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줄 몰랐습니다. (어느새 1년 8개월이 훌쩍 넘었네요) 혼자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평화로운 점심을 먹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바람에서 시작했고, 간혹 샌드위치나 샐러드, 볶음밥도시락도 싸고, 또 가끔은 사먹기도 하며(심지어 김밥을) 그렇게 보통의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김밥을 먹는 걸 알게 된 지인들은 간혹 묻습니다. 매일 김밥 먹는 거 질리지 않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꽤 진지하게 생각한 적 있는데, 아직은 괜찮다,입니다. 물론 처음 김밥을 만들어 먹을 때의 마음은 아닙니다. 더 이상 뭘 넣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재료도 넣어보았고 그 맛의 조화도에 따라 새로운 발견이라며 신나한 적도 있지만 그 어떤 김밥도 결국 나를 지탱하는 한 끼잖아요.
지금 가장 많이 먹는 김밥은 보통 김밥입니다.
어묵, 단무지, 오이, 달걀, 맛살, 우엉, 당근 등 김밥에 넣는 흔한 재료가 든, 때로는 한두 개 재료가 빠진 채 간만 맞춘 보통 김밥이요. 일명 김밥집 기본 김밥.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든든함이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 맛의 거의 비슷한 내용물의 보통 김밥에 일주일에 한 번쯤 좀 다른 재료를 넣은 조금은 다른 김밥을 먹는 것이죠. 보통의 김밥이 있으니까 더 특별한 김밥이요.
내가 먹는 김밥의 대부분이 보통인 것처럼, 내가 사는 날도 보통날입니다. 매일 매일 두근두근 신나는 모험이 있거나 가슴 뛰는 행복감을 느낄 순 없습니다. 아주 가끔 있는 날, 혹은 있을지도 모르는 날은 정말 소중하지만 내가 보내는 보통날이 모이고 모여 내가 살아온 날, 내 인생이 된다는 걸 자주 잊습니다.
보통 김밥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처럼, 보통의 날도 분명 그럴 텐데요.
보통의 재료로 보통 김밥을 만들 땐, 가끔 작은 변주를 하곤 합니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한두 줄 놓던 어묵을 가늘게 채쳐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러면 또 미묘하게 식감이 달라져서 새롭습니다.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 나의 보통날에도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퇴근길, 한 정거장 미리 내려 슬슬 걸어도 좋고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오분 쯤 돌아가도 좋고요.
어느새 2020년의 마지막날입니다.
남아있는 2020년 하루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의 모든 보통날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기를. 가끔 아니 자주 힘들더라도 견딜 수 있도록 마음 근육이 커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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