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서 바로 먹어요, 그거면 돼요
지금 생각해보면 소풍이 좋았던 건 김밥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소풍날 새벽 집안에 퍼지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특유의 김과 밥이 함께 만나 풍기는 냄새.
친구들과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놀아서도 아니고, 수업을 안 해서도 아니고 좀 느긋한 시간에 엄마가 김밥 싸는 옆에 앉아 척척 김밥속재료를 넣고 손으로 돌돌 말아 꾹꾹 누르고 착착 쌓는 그 기술을 보는 게 좋았어요.
엄마는 김발없이 맨 손으로 김밥을 말 수 있었는데, 그게 또 엄청 신기했거든요.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엄마의 김밥 싸기는 계속 됩니다. 한 줄 쌌으니까 맛도 보여줄 겸 썰어주면 좋겠는데 그런 거 없어요. 꼼짝 없이 엄마가 열 줄의 김밥을 쌀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드디어 김밥을 썹니다.
함부로 손이 나갔다간 혼납니다. 소풍용 도시락에 김밥 두 줄씩 예쁘게 넣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중간에 하나라도 터져라 그러면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엄마 김밥은 단단히 잘 말려 그런 일이 없어요.
드디어 먹어 봐, 하고 엄마가 김밥 꽁다리를 모은 접시를 줍니다.
야호! 진짜 이거 먹을 때가 제일 좋아요.
정작 소풍 가서 먹는 김밥보다 이렇게 엄마 옆에서 받아먹는 김밥이 훨씬 맛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맛난 김밥 먹는 법은 누군가가 싸주는 김밥을 옆에 앉아 잘라주는대로 바로 먹는 겁니다. 도마 위의 김밥을 집어먹으면 더 맛있고요.
누군가가 싸주지 않는다면 내가 싸서 접시에 옮기고 어쩌고 할 것 없이 바로 잘라 그 자리에서 서서 먹는 거지요.
그렇게 꽁다리 한두 개 먹는 게 가장 맛있습니다. 김밥이 가장 따뜻할 때이기도 하고요.
도시락 싸려고 김밥 마는데 어쩐지 너무 먹고 싶네요.
치즈 두 장 푸짐하게 넣었더니 밥에 살짝 치즈가 녹아 더욱 고소합니다.
아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요.
에라 모르겠다 도시락은 됐고! 신나게 썰어 도마에 놓고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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