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국 말고 시락국이라고 해야 제맛
엄마가 보낸 택배 상자에는 정체 모를 얼음덩어리들이 자주 있습니다. 혹시나 상할까 봐 아이스팩 대신 이것저것 냉동한 것을 보내는데요, 때로 양파즙이기도 하고 때로 사과즙이기도 하고 가끔 식혜이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은 얼음덩어리만 보낸 건가 싶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땐 주로 국을 꽝꽝 얼린 것입니다.
한 번 먹을 정도로 소분해서 얼리는 섬세함은 없습니다. 일단 한 번 얼렸다 녹인 건 다시 얼릴 수 없으므로 한 번 해동한 국은 몇 끼 연속으로 먹어야 합니다.
국을 그리 즐기지 않아서 거대한 국덩어리가 마냥 반갑진 않은데요, 그래도 시락국은 참 반갑습니다. 들깨가루도 싫어해 들깨칼국수 들깨죽 들깨미역국 다 별로이지만 시락국에 들어 있는 들깨 맛은 구수해요. 경상도 사람들이 ‘시락국’이라고 하는 ‘시래기국’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UgAkD/btqXj8aR0aN/Eef1xWvhFQ2kQsNkz9kVuK/img.jpg)
이 국은 시래기국이라고 부르면 맛이 안 나요. 시락국이라고 해야 비로소 입안에 침이 돕니다. 냄비 한 가득인데 언제 다 먹나 싶지만, 시락국은 줄어드는 속도가 정말 빨라요. 국 한 그릇으로 안 끝나거든요. 심심하면서 구수하고 들큰하면서도 속이 뜨뜻해지는 것이 밥 없이도 술술 넘어갑니다.
감기 들지 않게 목 따뜻하게 하고 다녀라, 장갑끼고 다녀라,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엄마의 당부가 이런 맛이겠지요. 시락국을 훌훌 넘기는 동안에는 옆에 엄마가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국 냄비가 아쉽습니다.
오늘 아침, 마지막 남은 국 한 그릇입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습니다. 시래기도 씹어봅니다.
엄마 마음 한 그릇, 잘 마셨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BYq3p/btqXwdviyfZ/3SjDwhcxeLzaJn9qKx6ADK/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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