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아준 김밥엔 당근이 없었어요.
시금치나 오이, 때로 김치도 넣곤 하셨지만 당근은 없었어요.
저는 엄마의 김밥이 좋았어요. 당근을 넣은 김밥은 색은 예쁘지만 맛은 별로였거든요.
왜 엄마의 김밥엔 당근이 없었을까? 늘 영양가를 따지는 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근 채치는 게 귀찮으셨나보다, 해요.
맞아요. 당근을 김밥에 넣으려면 채를 치고 볶아야 하잖아요. 아우 그거 언제 하고 있어요?
내가 김밥을 말게 되면서 은근슬쩍 가끔씩 당근을 넣게 됐어요.
전 좋은 채칼이 있거든요. 하하하. 순전히 채칼 쓰려고 당근을 사요.
자주는 아니예요. 아주 가끔이요.
아직도 당근은 맘 먹고 사야 하는 채소예요.
당근을 직접 사게 되면서, 제주가 당근으로 유명한 것도 알게 됐습니다.
김밥용 당근은 굵고 클수록 좋아요. 그래야 채칼을 사용하기가 편하거든요.
당근 한 가운데 젓가락을 깊이 박고, 한 손으로 단단히 잡은 후 채칼을 수평으로 슥슥 밉니다.
그 느낌이 중요해요. 채칼과 당근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쌓이는 당근채, 그리고 조금은 평온해지는 내 마음.
그러고보니 당근채를 만들 땐, 뭔가 마음이 어지러울 땐가 봐요. 그렇군요, 그렇군요.
프라이팬에 기름 조금 두르고 당근을 볶습니다. 빳빳하던 당근채의 숨이 죽으면 소금을 골고루 뿌려줘요.
이렇게 당근 듬뿍 넣은 김밥을 먹다보면, 당근맛에 조금은 익숙해져요. 이렇게 계속 당근을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당근 먹기 전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랐으면 좋겠다 하지요.
당근 밑에 깔려서 잘 안보이긴 하지만, 이 김밥엔 유부도 듬뿍 들어있어요.
(기억나시죠? 흩어지고 쉬운 재료일수록 아래에 깔고 위를 잘 덮어라)
김밥에 햄이나 고기를 넣지 않는 저는, 때로 졸깃졸깃 씹는 맛을 위해 유부를 볶아 넣습니다.
통유부를 사서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가 기름기를 빼고 맨 프라이팬에 덖듯이 볶아 물기를 날린 후 간장으로 살짝 간하면 꼬들꼬들 고소한 유부가 됩니다.
유부와 당근을 넣은 김밥은 알이 굵어야 제맛입니다. 주황과 옅은 노랑의 조화 참 좋네요.
더 맛있게 먹는 팁
- 유부 볶아 간할 때 간장도 소금도 좋지만 굴소스 조금 뿌려보세요. 감칠맛이 확 올라와요.
- 당근은 소금으로 간하는 게 좋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예쁜 주황, 당근당근의 색을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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