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속 아빠 마음
어릴 땐 편식이 심했습니다. 그 때문에 나름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먹기 싫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해서 먹지 않는 것이었는데도 주변 어른들로부터 이런 저런 걱정을 들었죠. 그나마 집에선 저의 편식이 익숙해서 핍박이 좀 덜했지만 고모나 이모댁에 가면 꾸중 섞인 음식강요가 있어서 좋은만큼 싫었습니다.
제가 먹지 않는 건 고기류와 생선류였어요. 물론 고기와 생선이 들어간 국물도 못 먹었어요. 특히 냄새도 맡기 싫었던 건 곰국류였습니다. 실제로 곰국 끓이는 냄새에 구역질이 나와 엄마한테 호통을 들은 적도 있어요. 음식 앞에서 별스럽게 군다고.
식탁에 놓인 반찬 중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몇 개 안 되어서 젓가락질이 집중되곤 했는데 엄마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눈치가 보이곤 했거든요. 어린 마음에 서러웠던 적도 많았어요. 못 먹어서 못 먹는 건데 야단을 듣는 게 싫었어요.
그런 저도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있었는데 돈까스, 햄과 비엔나소시지, 만두 등이었어요. 엄마는 햄이나 소시지가 몸에 좋지 않다고 자주 해주시지 않았어요.
아빠는 가끔 만두를 사오셨어요. 만두전문점에서 바싹하게 튀긴 군만두와 속이 비치는 찐만두, 주먹보다 큰 왕만두까지 골고루 사오셨죠. 이상하게도 만두 속의 고기는 냄새도 안 나고 간장에 콕 찍어먹으면 맛도 그만이어서 아주 즐겁게 먹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히 왕만두가 좋았어요. 두손으로 잡고 한입 베물면 폭신한 만두피와 만두소가 입안 가득,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정말 좋았죠. (호빵도 만두호빵을 좋아했어요, 전!)
제가 만두를 먹을 때마다 엄마는 “참 나, 그 고기는 심지어 좋지도 않은 돼지고기일텐데 그건 어떻게 먹냐”며 신기해했죠.
어른이 되고 집을 떠난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퇴근길에는 만둣집이 있습니다. 찜기에서 김이 오르고, 누군가 만두를 사가는 걸 보며 혹시 그 때, 아빠가 사온 만두는 사실상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생각합니다. 가만히 짚어보면 가족 중에 나말고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 땐 먹느라 몰랐지만.
아빠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거나 편식하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딸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기 든 음식을 사왔던 거죠. 어차피 고기를 먹는 게 목적이라면, 그 방법이 잔소리처럼 들리는 억지강요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지혜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지 말아야지 말 하는 대신 무언가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추석이 코앞입니다. 아빠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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