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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자고 하는 말

한 시절이 가도 잊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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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 안아 줘, 꼬옥"


 

오자와 마리라는 만화가의 작품을 참 좋아합니다. 읽고 나면 삐죽삐죽 거칠게 일어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싸늘한 손이 따뜻해져 옵니다. 세상의 온도가 2도쯤 올라간 것처럼 느껴져서 추울 때 읽으면 뜻밖의 난로 효과도 있습니다.

오자와 마리의 작품에는 악인이 없어요. 그 때 나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때로 주인공을 음해하고 괴롭히기도 하고, 얄미운 말과 행동으로 속상하게도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미움, 그의 행동, 그의 말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거 언젠가의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오자와 마리의 세상이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짐을 지고 가듯 이곳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힘들 땐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웃는 사람들이 많을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벌써 10년도 더 전부터 정말 몇 번을 읽고 소중히 보관했던 책입니다. 그동안 몇 차례의 책 정리 와중에서도 한 번도 리스트에 들지 않았던 그야말로 소장1호 책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장면 하나하나 곱씹어가며 보고 또 보고 웃고 울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책을 들추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렇게 내 시간 속에 멈춰있는 것도 좋겠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나의 한 시절, 그 시절이 끝났구나 하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정말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복숭아처럼 말랑하고 매끈하던 발뒤꿈치가 딱딱해지는 동안, 나는 얼마나 어른이 된 걸까요.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마음에 들어할까요?

마음이 자꾸 삐걱거립니다. 이렇게 나에게 의문이 들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두 주인공 수와 농농 모녀가 가르쳐준 대로 나를 꼬옥 안아줍니다. 어쩐지 불안하고 어쩐지 슬프고 어쩐지 초라할 때 이 책의 모녀 수와 농농은 힘껏 팔을 벌려 꼬옥 안아 줘, 꼬옥솔직하게 포옹을 청했답니다. 그렇게 서로를 꼬옥 안으면 보호결계가 생긴 것처럼, 거짓말처럼 그 모든 어둠이 사라졌어요.

 

한 시절이 가도 잊지 말아야 할 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를 언제나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거면 언제 어디서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나의 주제곡을 가질 수 있어요.



 

이 책의 가치를 아는 분께 보내고 싶었어요. 사실은 정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예의바른 분이 기쁘게 데려가셨어요. 아마 그 분의 공간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고 있겠죠. 그렇게 그 분의 또 다른 한 시절이 시작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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