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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자고 하는 말

움직이는 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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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식구, 엄마의 1순위 

 

“밥 먹었나.”

“밥 먹고 있어요.”

“뭐하고 먹나.”

“생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네가 생굴도 먹어?”

“엄마, 나는 생굴만 먹고 익힌 굴은 안 먹는데?”

“그랬던가? 그랬나. 그랬었나.”

 

 

어제 저녁 엄마와 나의 전화통화 내용입니다. 어제는 굴이었지만, 다른 식재료도 많습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엄마가 생각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내가 안 좋아한다고 엄마가 생각하는건 많이 좋아합니다.
사실 엄마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지 않은 지 꽤 오래 됐기 때문입니다. 엄마 품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을 앞에 두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소리를 반찬 삼아 숟가락을 놀리던 아이는 이제 없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짧은 날을 함께 보낼 뿐, 엄마와 나는 가족이긴 하되, 식구는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요. 그사이 내 식성도 취향도 조금씩 변했겠지요. 밥을 함께 먹지 않으니 챙길 일도 없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은 흐려지죠.

그러려니 합니다. 나 역시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안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 정보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돼지고기를 안 드시는 엄마였는데, 이제 누가 주면 냉동만두도 쪄서 드시고(당신이 직접 사는 일은 없습니다), 느끼해서 절대 싫다던 피자도 한 조각은 맛있게 드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치즈를 한 장씩 드시고 계신 걸요. (열심히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젠가 명절 앞두고 함께 시장을 보는데 엄마가 고구마를 많이 사는 겁니다.

“고구마 뭐하게요?”

“고구마 튀김 하려고.”

“제삿상에 놔봐야 모양도 안 나고, 맛도 그런데 귀찮게 뭐하라 튀겨요.”

튀김이랑 전 부치는 건 내 차지가 될 것같아 슬쩍 꾀를 부렸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무개가 좋아해.”

그 아무개는 엄마의 며느리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다 까드시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건 아는구만, 이게 첫 생각. 서운한 마음 10퍼센트쯤? 그러다 점점 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챙기는 엄마가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엄마보다 훨씬 좋습니다. 며느리에게 다정한 엄마가 좋습니다.

내가 순서에 밀려도 좋습니다. 사실 그게 맞는 일이지요. 엄마는, 딸보다 며느리와 더 자주 보는 걸요.
마음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누군가에게도 내어 줄 자리가 생기죠. 마음은 움직이며 더 커지니까 내 자리 없을까봐 걱정하지 말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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