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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가라고 등 떠밀어주네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어제 또한 그제와 별로 다르지 않았고, 오늘 역시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도 유난히 힘든 날이 있습니다.
이제 슬슬 출근 준비해야 하고, 출근해서 또 하루 분의 일당을 비축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이렇게 어려울 때 그래도 따박박 월급 받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엄마 말이 귀에 계속 맴돕니다. 알고 있지만, 지금 너무 마음이 차가운 걸요.
이럴 때 굶으면 더욱 쳐집니다. 그렇다고 우걱우걱 무엇을 먹는 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부엌으로 갑니다. 먹고 남은 국이나 찌개가 있으면 무엇이든 괜찮아요.
얌전히 국물만 좀 따르고, 냉동실에 비축해둔 찬밥 한 덩이나 누룽지 부어 바글바글 끓입니다.
환자가 아니니 정식으로 죽을 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죠. 반찬 다 챙겨 먹을 의욕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밥과 국, 혹은 밥과 찌개만 달랑 먹기엔 어쩐지 서러우니까 죽으로 합니다.
일명 어제 먹은 찌개로 끓이는 오늘아침 죽입니다.
이 죽은 고춧가루 듬뿍 넣고 끓인 어제 된장찌개 남은 국물로 만든 얼큰된장죽입니다.
반찬도 필요 없는 이 죽 한 그릇을 먹으니 조금씩 기운이 납니다.
그럴 때도 있다고, 기분에 지지 말라고, 일상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니 그래도 가라고 등 떠밀어주는 죽 한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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