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만난 엄마의 봄맛
엄마 택배 상자에 수줍게 들어있던 쑥떡 한 가닥. 이런 건 반갑지 않은데. 쑥 뜯느라 산비탈 여기저기 다녀시는 거 진짜 마음에 안 들어요. 무릎이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손이 아프다 하시면서 도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건지. 쑥 한 웅큼 뜯다가 괜히 골병만 얻죠. 언젠가는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을 쑨다 어쩐다 하시더니 심지어 당신이 드시는 것도 아니고 남 주기 바빠 도토리는 다람쥐가 먹게 두세요, 다 주워오면 다람쥐는 뭐 먹어요, 한 적도 있거든요.
"엄마 나 쑥떡 안 좋아한다니까요."
"아이고, 많이 넣지도 않았잖아. 출근 전에 먹으면 얼마나 든든한데. 그거 약쑥이다 약쑥. 내가 직접 캔 쑥으로 방앗간 가서 직접 한 떡이라고."
엄마의 떡 예찬이 이어집니다.
안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눈치를 보면서 떡 한 줄 끼워넣는 엄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손이 안 가서 냉장실에서 계속 잠자고 있던 쑥떡을 꺼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보내주신 건데 계속 못본 척하다가 버릴 순 없잖아요)
아, 너무 딱딱해졌어요. 그냥 베어먹었다간 이가 나가겠는데요?
와 칼도 겨우 들어가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자릅니다. 반만 자르자, 반만. 다 먹지도 못해.
프라이팬에 들기름 좀 넉넉히 두르고 떡을 굽습니다. 앞뒤로 노릇하게 구우면 끝입니다.
어라, 예상보다 맛이 더 좋습니다? 꾸덕꾸덕한 떡살이 부드럽게 풀려 겉바속쫄깃이랄까요.
들기름과 쑥의 조화도 나쁘지 않아요. 역시 오래된 떡을 살리는 신의 한수는 들기름인가.
이렇게 엄마의 봄이, 엄마의 봄맛이 입에 가득찼습니다.
이렇게 된 것, 좀 더 근사하게 먹어볼까요.
얼른 커피를 내려 함께 먹습니다.
좋네요. 참 좋네요.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가끔 먹으면 색다릅니다.
봄 내내 산비탈 여기저기 엉금엉금 다니며 캔 쑥을 잘 다듬어 쑥떡으로 만든 엄마 마음도 함께 먹는 거니까요.
하지만, 내년엔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 이 쑥떡이 아무리 맛있은들 엄마의 무릎과 바꾸고 싶진 않아요.
농담 한 마디
원래 이렇게 여섯 조각 구웠거든요. 떡만 휘리릭 먹고 말 생각이었는데, 막상 입에 넣으니 꽤 괘찮아서, 커피도 내리고 커피잔이랑 안 어울려서 그릇도 바꾸었어요. (바꾼 그릇이라고 딱히 더 잘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커피잔은 이모가 물려주신 것이고, 쑥떡은 엄마가 주신 것이니 엄마 자매의 기운을 받아 오늘 출근길은 위풍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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