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온 식물을 환영하는 방법
어젯밤까지만 해도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 온 집의 창을 꼭 닫아두었는데, 오늘은 날이 갰습니다.
햇빛이 나고 하늘이 맑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붑니다. 잽싸게 창을 열고 우리 집 식물님의 자리를 옮겨줍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좋은 자리를 내드립니다.
우리 집에서 몇 년을 같이 산 어르신들은 좀 뒤에서 느긋하게, 키 작고 어린 식물들은 창가에 올려 햇빛 샤워 바람 샤워를 즐기게 합니다.
이파리들이 살랑이는 것이 어쩐지 기분 좋아 보입니다.
창가에 있는 작은 식물 중 맨 왼쪽에 있는 게 스투키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 집에 온지 두 달이 안 됐어요. 스투기 입장에서는 온도와 습도, 햇빛과 바람이 적당하고, 섬세하게 돌봐주는 사람이 있던 화원에서 이곳으로 온 셈이니 삶의 질이 단숨에 추락한 셈이죠. 낯선 공간, 낯선 사람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때여서 지금까지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흙을 살펴 물 주는 것 외에는 가만히 내버려두었습니다. 너무 외롭지 않도록, 너만 여기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집에 온 지 3년 차 작은 화분 둘과 함께 두었죠.
그동안 날씨가 너무 안 좋았잖아요. 오늘쯤이면 자리를 이동해도 놀라지 않겠다 싶어 공간을 옮겨보았습니다. 베란다도 테라스도 없는 집이어서 미안해, 하면서요.
새로 들인 식물이 잘 자라게 하려면 그 집에서 가장 좋은 공간(햇빛이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는)을 내주고 무심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더군요.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라는 책에서 읽은 건데요, 정말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누구에게나 낯선 환경은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그 누군가가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려면 이미 그곳에 있던 존재들의 센스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속도로 익숙해질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무심한 척 느긋하게 기다리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 딱 그만큼의 친절.
모두에게 공평하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늘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베풀 필요는 더더욱 없지만 이 상황을, 이 공간을 낯설어하는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한 뼘의 햇빛 같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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