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불가, 남은 걸 먹을 뿐
망원시장 근처 건물 2층에 빵집 하나가 생겼습니다. 빵집이 생기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떤 빵집이기에 이렇게까지 줄을 서 있나요. 핫한 가게들이 자주 그렇듯이 이 집도 곧 줄이 없어지겠지, 그 때 먹어봐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주말이면 제가 지나갈 때마다 계속 줄이 긴 겁니다. 계단을 채우고 1층 아래까지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게 벌써 일 년은 된 것 같기도 해요.(기억이 잘...)
오래 기다려서 사먹을 정도의 인내심은 없어서 그냥 지나치곤 했지요.(그리고 올해는 코로나19...)
제가 퇴근하고 이 앞을 지날 때쯤 어김없이 솔드아웃 표지판이 턱. 아주 가끔 그 표지판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슬며시 올라가봅니다.
지금까지 네다섯 번 정도 이 빵집을 갔지만 빵이 쌓여있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저 그 시간에 뭔가 한두 개 남아 있으면 그걸 사거나 그냥 나오거나의 선택.
네, 이곳은 어글리베이커리라는 곳이고 SNS에선 엄청 핫하더군요.
크림빵이 엄청 유명한 줄 알았는데, 스콘이나 앙버터류, 식사빵과 페스트리, 심지어 샌드위치까지 인기가 엄청나더라고요.
처음에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새 생긴 메뉴판. 가게 앞 유리창에 떡하니 붙어 있으니 한 번 보세요.
크림빵 종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는 없었어요.
푸하하크림빵, 크림바바크림빵 등 유명하다는 크림빵도 먹어보았고 먹을 땐 물론 상당히 맛있었지만 자꾸 생각나거나 그렇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글리베이커리의 크림빵 류에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제 취향상)
처음 먹어 본 건 얼그레이크림빵인데요, 일단 어디까지가 빵이고 어디서부터가 크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크림이 정말 듬뿍 들어 있습니다. 정말 크림을 감싸기 위한 최소한의 반죽이라는 느낌.
점점이 박혀 있는 건 초콜릿 조각 같아요. 크림 아래 팥처럼 보이는 것도 먹어보니 팥이 아니라 초콜릿이더라고요.
크림바바 크림빵에선 빵의 존재감이 확실히 있고, 푸하하크림빵도 크림이 듬뿍 들긴 했지만 이것은 빵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다면, 어글리베이커리의 크림빵은 뭐랄까 크림과 빵의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존득하고 촉촉하달까요.
맛은 둘째치고, 이 정도 크림을 넣으려면 이 가격은 받아야겠구나 납득해버렸다고 할까요. 크림도 좀 더 무거운 느낌이고요.
(어글리베이커리 크림빵이 푸하하나 크림바바보다 1천원 정도 더 비싸요)
두 번째로 먹어본 빵은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크림치즈와 팥과 밤이 들어간 무엇이었는데...하아, 모르겠습니다. 제가 고르는 게 아니라 그 날 그 때까지 남아 있는 빵 중에 이걸로 주세요, 골라오는 판이라.
들어간 게 아까워서 산 것이지, 제가 이런 팥 들어간 빵을 안 좋아해요. 그런데 이게 또 상당히 맛있습니다?
주는대로 먹어, 다 맛있으니까도 아니고, 그 때까지 남아 있었다는 건 그날 손님들껜 선택받지 못했다는 건데 덕분에 평소라면 먹지 않을 빵맛을 보았네요.
역시 속이 푸짐합니다. 크림이든 팥이든 치즈든 간에 빵 속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도 살 땐 어 좀 비싼데? 이런 느낌이었지만 먹고 나니 그래, 납득.
이건 비교적 최근에 먹은 것이라 선명하게 이름이 기억납니다.
구황작물피자치아바타 뭐 이런 이름이었어요. 치아바타 위에 단호박과 고구마 등의 구황작물 필링을 올리고 치즈로 덮어 구운 것 같습니다.
이게 제 입엔 제일 별로였습니다. 네네, 전 구황작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기대한 피자의 짭조름한 맛이 없었어요. 달콤한 피자라니, 전 하와이안 피자도 안 먹는 걸요. 하지만 단호박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반가울 빵.
이건 바나나와 크림이 듬뿍 든 바나나아몬드크림크로와상입니다.
크림 필링이 정말 듬뿍 들었죠? 빵은 크로와상같은 느낌은 덜했지만 맛은 훌륭했어요.
맛을 그린달까, 상상력도 좋고 실력도 좋으시구나 감탄했습니다.
초콜릿스콘도 먹어보았습니다. 이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브라우니가 절대 주지 못하는 꾸덕함과 진한 초콜릿, 달지 않아 더 좋았어요.
재료를 충분히 듬뿍 쓰고 재료간 조화도 좋아서 그리 좋아하는 종류의 빵이 아니어도 맛있게 먹었어요. 앞으로도 퇴근길, 혹은 지나다니며 줄이 없다면 한 번씩 기웃거릴 것같은 어글리베이커리.
여기 대파빵 맘모스빵이 엄청 유명하던데, 다른 건 몰라도 대파빵은 진짜 먹어보고 싶은데 언젠가 먹을 날이 올까요.
모두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망원동 망원시장 망리단길 놀러오시면 한 번 맛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빵지순례니 빵집순례니 먼 곳의 빵집도 나만 결심하면 갈 수 있던 날이 그립네요. 어서 그 일상을 찾으면 좋겠어요.
참, 이곳에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택배주문을 받더라고요. 여러 종류 빵을 섞어서 꾸러미를 꾸려서. 한여름엔 안했는데 찬바람 불면 할 것같아요.
사회적거리두기 유지하며 잘 먹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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