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커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먹습니다
어른이 되고 혼자 살아서 좋은 점은 많습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 때의 좋은 점도 헤아릴 수 없죠) 그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점이라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먹든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은 음식에 대해 나름의 철학과 고집이 있는 분들이셔서 먹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곤 했어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이런 것들.
초밥 먹을 땐 초고추장을 찍으면 안 돼. 와사비간장에 찍어야 제맛을 알지. 아빠의 말씀이었는데, 그 말이 맞다는 건 저도 이제 압니다. 하지만 그 땐 초고추장이 더 맛있었어요.
엄마는 먹을 때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아침부터 무슨 과자니? 아침부터 무슨 라면이니? 아침부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이런 건 변형도 쉬워서 잘밤에(곧 잘 텐데) 무슨 과자? 잘 밤에 무슨 라면? 잘 밤에 무슨 빵? 잘 밤에 무슨 아이스크림?이 되곤 했죠. (추운데 무슨? 더운데 무슨?도 있었고요)
어린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따로 있는 건가? 왜 지금은 그 때가 아닌가 하고요. 내가 크면 내가 먹고 싶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가득 먹어야지, 결심했고! 그 결심을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습니다.
나란 사람, 먹는 것에 관해선 초심을 잃지 않는 자.
요즘 같은 날씨에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이라니, 싶으신가요. 살짝 추울 때 먹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입맛도 없고(정말?) 입도 좀 까끌하니까(정말?) 부드럽게 넘어가는 걸 먹어야 해요.
전 죽은 싫어하니까 차가운 죽처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으로 합니다.
아이스크림 한 가운데 포크 탁 꽂고,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 아이스크림 한 통은 그야말로 오로지 나만 먹는 것, 나를 위한 것.
아이스크림 그까짓것, 작은 거 한 통은 먹어야 아, 이제 좀 먹었구나 합니다.
서울우유 레트로 아이스크림 때문에 최근 좀 밀리긴 했지만, 제가 애정하는 아이스크림은 불라와 바세츠 브랜드예요.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우유와 크림맛이 진하게 나고요. 물론 칼로리 생각하면 저렇게 한 통 다 먹어도 될까 싶지만, 매일 먹는 거 아니잖아요. 하하.
더 맛있게 먹는 팁
- 브라우니 위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 올리면 맛있죠. (다 아시죠?)
- 아이스크림 위에 블루베리, 딸기, 바나나 등 과일을 올리면 맛있죠. (다 아시죠?)
- 전 엄마 앞에서 야금야금 아이스크림 먹으며 "아니 한 통 다 먹을 셈이냐?" "아직도 먹고 있어?" 이런 잔소리 듣다가 등짝 맞으면 훨씬 더 맛있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그 때처럼 그만 먹어! 하고 뺏아가시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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